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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배경 영화 <와일드 씽> 리뷰 트라이앵글, 오정세, 향수코미디
진지한 이미지로 유명한 배우가 아이돌처럼 춤을 춘다면, 그게 재미있을까요 어색할까요?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한 채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개봉 전부터 공개된 뮤직비디오와 노래가 워낙 화제였던 터라 기대치가 꽤 올라가 있었거든요. 그 결과는 아래에서 직접 풀어보겠습니다.
트라이앵글이라는 2000년대 배경설정, 얼마나 그럴듯한가
이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2000년대 초반 혼성 그룹(mixed gender group) 붐을 먼저 떠올려야 합니다. 혼성 그룹이란 남녀 멤버가 함께 구성된 아이돌 그룹 형태로, 코요태·샵·투야 등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혼성 그룹은 여성 리드 보컬, 남성 댄서, 남성 래퍼라는 역할 분담 구조를 많이 사용했는데, 영화 속 '트라이앵글'도 그 공식을 그대로 따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그 시절 재현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요 프로그램 무대, 당시 특유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표절 시비로 그룹이 무너지는 서사까지 2000년대 가요계의 생리를 꽤 세밀하게 담아냈습니다. 강동원이 연기한 리더 황현우는 지금 라디오 패널 자리도 위태롭고, 엄태구의 래퍼 구상구는 보험 영업직을 뛰고, 박지현의 보컬 변도미는 건설사 재벌가에 며느리로 들어가 있습니다. 한때 음원 차트 1위를 찍었던 그룹이 이렇게 흩어져 있다는 설정이, 저 또래 관객에게는 꽤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국내 대중음악 산업의 흐름을 보면,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자료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은 혼성 그룹 포맷이 정점을 찍은 시기였으며 이후 아이돌 기획사 시스템이 본격화되면서 해당 포맷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건 그냥 향수 소비가 아니라 꽤 계산된 선택으로 보입니다.
오정세의 최성군, 이 캐릭터만큼은 달랐다
코미디 영화를 볼 때 저는 세 가지를 봅니다. 기세, 뻔뻔함, 그리고 리듬감입니다. 여기서 리듬감이란 단순히 빠르고 느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개그 타이밍을 치고 빠지는 코미디 특유의 호흡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맞아 떨어질 때 웃음이 터지는데, 이 영화에서 그걸 제대로 해낸 건 오정세가 연기한 최성군 캐릭터 하나였습니다.
최성군은 당시 트라이앵글에 밀려 38주 연속 2위를 기록한 비운의 발라드 가수입니다. 지금은 그 논란을 뒤로하고 허가받은 포수(licensed hunter)로 활동 중입니다. 포수란 야생동물 포획 허가를 받아 법적으로 사냥이 가능한 직업을 의미합니다. 전직 발라드 가수가 총을 들고 다닌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코미디인데, 오정세는 이 설정을 과하지 않게, 하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는 방식으로 소화합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크게 웃었던 장면은 최성군이 PD와 작가 앞에서 섭외 자리에서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신입니다. 이 장면에서 오정세가 들어가는 호흡과 표정이 말 그대로 미쳤습니다. 앞 장면이 다소 늘어진 탓에 무방비 상태에서 터지게 되는 구조도 효과적이었고요. 또 콘서트장을 향해 가다가 멧돼지를 마주치고 시동을 걸었다 껐다 하는 장면, 저는 그 갈등하는 눈빛에서 사이코패스 연기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트라이앵글 세 명, 아쉬움이 남는 이유
그렇다면 주인공 트라이앵글 세 명은 어땠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자체가 부족한 게 아닙니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모두 댄스와 퍼포먼스를 소화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고, 그 자체로 신선한 재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캐릭터 톤(character tone)에 있습니다. 캐릭터 톤이란 해당 인물이 관객에게 어떤 온도로 전달되는지를 의미하는데, 코미디에서 이 톤이 처음부터 과하게 설정되면 나중에 비틀 여지가 없어집니다. 세 캐릭터 모두 영화 초반부터 오버 액팅(over acting) 모드로 진입해 있어서, 정작 웃겨야 할 순간에 이미 예상이 다 됩니다. 진지하게 연기를 하다가 상황이 비틀릴 때 웃음이 나는 건데, 처음부터 코미디 모드로 출발하면 반전 자체가 없어지는 겁니다.
영화 전체의 페이싱(pacing)도 아쉽습니다. 페이싱이란 영화의 장면 전환 속도와 흐름을 말하는데, 이 작품은 특정 신을 한 번에 치고 넘어가지 못하고 같은 상황을 2트, 3트 반복하면서 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콩콩걸 장면이나 트럭 장면 같은 경우 상황 자체는 충분히 재밌는데, 그 상황을 빨리 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면 훨씬 살았을 겁니다.
트라이앵글 세 캐릭터가 웃음을 책임지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황현우(강동원): 아이돌 댄스 퍼포먼스 재현 장면에서 신선함은 있으나 반전 없이 계속됨
- 구상구(엄태구): 솔로 도전 실패 후 현재 모습이 공감 포인트지만 개그로는 약함
- 변도미(박지현): 재벌가 며느리라는 설정이 흥미롭지만 충분히 활용되지 못함
2000년대 향수코미디와 결말이 남긴 온도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2000년대 향수(nostalgia) 재현만큼은 충분히 값어치를 한다고 봅니다. 향수란 과거의 경험이나 감성을 현재 시점에서 그리워하는 정서적 반응을 의미하는데, 이 영화는 그 감성을 굉장히 세밀하게 건드립니다.
당시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톱텐 분위기, 혼성 그룹의 무대 연출 방식, 표절 시비가 터지던 연예계 풍토까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아, 맞다'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장면들이 꽤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시대 재현 영화는 고증이 허술하면 바로 티가 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꽤 공을 들인 인상입니다.
영화 속 트라이앵글의 대표곡 'Love Is'와 '네가 좋아'는 개봉 전부터 뮤직비디오로 공개돼 화제를 모았는데, 실제로 2000년대 초반 혼성 그룹 노래처럼 중독성 있게 잘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에 따르면 이 시기 혼성 그룹 장르는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 뚜렷한 장르적 정체성을 형성했던 것으로 분류됩니다(출처: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결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예측 가능한 방향이긴 한데, 그 예측을 알면서도 따뜻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고, 엔딩 이후 등장하는 최성군의 추가 장면에서 또 한 번 웃었습니다. 기세, 뻔뻔함, 리듬감이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캐릭터는 역시 최성군뿐이었습니다.
결국 《와일드 씽》은 재료는 충분하지만 요리를 다 살리지 못한 영화라는 인상입니다. 최성군 캐릭터 덕분에 고점은 분명히 있고, 2000년대 향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극장에서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코미디 영화로서 평균적인 완성도를 따지면 기대치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오정세의 연기가 보고 싶다면 충분히 값어치가 있고, 그 시절 혼성 그룹 감성이 그리운 분에게도 추천할 만합니다. 보러 가신다면 메가박스에서 오리지널 티켓과 포토카드도 챙겨보시길 권합니다.